ACE88은 80년대에 전집류가 한참 유행할 때, 동서문화사에서 Abe보다 좀 더 높은 연령대를 겨냥한 전집 시리즈다.  50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Abe의 88권보다 적어 보이지만, 각 권은 Abe보다 두 배 정도 두껍기 때문에 부피는 만만치 않다.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를 겨냥했던 것 같고, 나는 초등학교 때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러한 전집류에 대해 번역의 문제라던가, 작품 선정, 라이센스 등의 문제들이 많이 지적되고는 한다.  물론 다 맞는 이야기다.  중역의 의심이 드는 책도 있고 라이센스가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직접 읽고 큰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전집류는 당시에는 알기도 힘들고 구하기도 힘든 괜찮은 작품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요즘과 달리 그 때는 어떤 작품이 재미있고 좋은지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 학교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추천 도서 목록들은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교육적인 책들의 목록일 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책들의 목록은 아니었다.  그리고 번역이 좀 나쁘더라도 그 나이에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이 아예 안읽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예 없는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번역이 중역이더라도 책을 읽고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80년대에는, 이런 전집류는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었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았다고 하고 싶다.

Ace88의 경우, 각 작품이 서로 다른 번역자들에 의해 옮겨졌고, 제목도 직역부터 의역까지 다양하게 번역되었고 원제도 쓰여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들이 도대체 무슨 작품들이고 원제는 무엇인지를 한 번 찾아보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원제를 갖고 찾아보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내 기억에 의존한 것이다.  유명 작품은 나중에 다시 읽어본 것도 있지만 나머지 작품은 그러지 못했기에 세부 사항들은 틀릴 수도 있다.

1. 루마니아 소년 (나지 이슈트반, 이가형 역)

István Nagy – The Feast of Rez Mihaly (Réz Mihályék kóstolója) (1947)

일단 첫 권부터 찾는데 애먹었다.  영어권 작가가 아니라 구글의 도움을 받아도 나지 이슈트반이란 저자 이름의 원래 표기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일본어로 검색해서 겨우 알 수 있었다.  이 전집은 일본어판 중역이 간간히 있는 관계로, 작가 이름을 짐작하기 어려우면 우선 일본어로 찾아보면 clue를 얻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루마니아 출생의 헝가리 사람으로, 헝가리나 루마니아에서는 명망이 높은 모양이지만 영어로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철자를 알아도 검색 설정을 루마니아 어로 해야 정보가 나온다.

미하이란 소년을 중심으로, 전후 루마니아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소년들이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어른들에게 장난치기, 보물 찾기, 낚시 등 그 또래 소년들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상이 그려져 있는데 몰입감이 상당하고 무척 재미있다.  세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아련한 엔딩만큼은 지금도 기억나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이가형씨는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옛날에 추리소설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름이 친숙할 텐데,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이었고 해문의 팬더 추리소설 시리즈의 단골 번역가였다.

2. 톰 깊은 밤 13시 (필립파 피어스, 신동춘 역)

Philippa Pearce – Tom’s Midnight Garden (1958)

어릴 때 정말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던 책이다.  내가 좋아하기로는 이 전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야기.

전염병이 돌자 톰이란 소년은 병을 피해 이모네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이모네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이 아파트는 낡은데다 주변은 너저분하고 놀 곳도 없고, 게다가 집주인은 바솔로뮤라는 성격 까다로운 할머니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잠을 잘 수 없던 톰은 어느날 밤 시계가 13번 종을 치는 걸 듣고 침대에서 나왔다가 낮에는 본 적이 없는 정원에 들어서고,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타임슬립 판타지의 고전적인 이야기로, 그동안 수많은 차원이동물, 타임슬립물들이 나왔기 때문에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제는 흔한 이야기로 치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 보면 역시 고전 반열에 드는 작품 답게 양산형 소설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이야기로, 굉장히 재미있고, 따뜻하고, 그리고 슬프다.  이야기란 소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새로 번역판이 나와 있으니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Carnegie Medal 수상작.  그리고 Medal 70주년 기념 투표에서 역대 2위에 오른 작품이다.

3. 중국 왕바오 (장 텐이, 김영수 역)

Zhang Tianyi

이 책은 단편으로 유명한 저자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 이야기가 중국의 어떤 소년과 표주박 이야기였고 그 밖에 여러 주제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 구성이었다.  작품들은 일상에서부터 판타지나 민담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 것으로 기억한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쉽게도 세세한 부분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4. 크라바트 (프러이슬러, 양혜숙 역)

Otfried Preußler – Krabat (1972)

역시 이 전집에서 손에 꼽히게 좋아하던 책이다.  18세기 동유럽 민담을 바탕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인데, 한 떠돌이 소년이 비밀 마법 결사에 들어가 겪는 일을 그린 이야기다.  이 비밀 결사는 낮에는 보통의 방앗간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두목을 중심으로 도제식으로 마법을 배우는 곳이다.  흔히 보는 마법 학교와는 달리, 이 비밀 결사에는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도 모두 이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  소년이 새로운 일과 마법을 배우며 계절이 바뀌고 여러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좇아가다 보면 순식간에 끝까지 다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며, 마법이란 소재를 동화 답지 않게 어둡고 건조한 분위기로 그려낸 명작이다.  주인공인 크라바트 외에 톤다, 유로의 이름은 아직도 생생하다.  역시 새로 번역판이 나와 있으므로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건 그렇고, 작가의 이름은 빼먹고 성만 쓰는 건 무슨 센스인지.  앞으로 보겠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 이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기억할 지 모르지만 오트프리드 프로이슬러는 메르헨 전집에 포함된 호첸플로츠 시리즈의 작가이기도 하다.

5. 인생의 길 (아취볼드 조셉 크로닌, 박일충 역)

Archibald Joseph Cronin – The Keys of the Kingdom (1941)

유명한 영어권 작가가 쓴 유명한 작품이라 정보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제목은 원제와 아예 상관 없이 새로 붙인 것인데, 원래 제목이 종교색이 짙어 바꾼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새로 붙인 제목은 또 내용을 너무 직설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오히려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소년 프랜시스 치셤이 성장하여 신부가 되고, 중국으로 선교를 떠나 고생 끝에 종교적인 성취를 이루는 이야기.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고난의 길을 걷는 프랜시스와, 역시 종교인의 길을 걷지만 좀 더 세속적인 길을 따라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프랜시스의 친구 안셈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지금 와서 원작의 줄거리를 확인해 보니, 이 책은 아마도 원작의 발췌역인 듯 하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책은 프랜시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해서 중국 선교로 끝난다.  그런데 원작은 6부로 이루어져 있고 프랜시스의 성장기가 2부, 그리고 중국 선교는 4부까지다.  나이든 프랜스시가 나오는 1부,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인 5,6부는 읽은 기억이 전혀 없다.  아마 읽기 쉽도록 중심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앞뒤 부분을 잘라낸 듯 하다.

6. 소련 마카 소녀 (리지야 네클라소바, 유성인 역)

루마니아 소년에 이어 소련 소녀다 (제목이 왜 이런 거야). 그런데 다른 건 다 찾아도 이 작품과 작가만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추가 – 동굴곰님이 정보를 제공해 주셨다.

저자는 Lidiya Vladimirovna Nekrasova 이며, 원제는 Birthday (День рождения) 라고 한다.  소련 마카 소녀 라는 제목은 일본에 소개될 때의 제목인 듯 하다.  책 소개 페이지 (https://libking.ru/books/child-/child-prose/524167-lidiya-nekrasova-den-rozhdeniya.html) 에 있는 내용에 따르면, Masha Cherkasova 가 전쟁에서 헤어진 어머니를 찾는 내용이라고 한다.

7. 태양의 제국 (제임스 그레엄 발라드, 이가형 역)

James Graham Ballard – Empire of the Sun (1984)

스필버그의 영화 “태양의 제국”의 원작이다. 부모와 함께 상하이에 살던 영국인 소년이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부모와 헤어져 모험(즉, 죽을 고생)을 하게 되는 이야기.  맨 부커상 수상에 영화화까지 된,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내가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듯.

8. 외로운 숲의 거인 (비탈리 비안키, 채대치 역)

Vitaly Valentinovich Bianki (Вита́лий Валенти́нович Биа́нки)

이 책은 자연에 대한 작품으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인 비탈리 비안키의 단편집이다.  출판된 단편집을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작품을 모아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실린 작품들은 역시 모두 자연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로 탐험, 동물, 사냥에 대한 내용들인데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외로운 숲의 거인”은 책의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인데 숲에 사는 거대한 수사슴과 그를 쫓는 사냥꾼의 이야기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했던 작품이다.

9. 짐 크노프 (미하엘 엔데, 김현욱 역)

Michael Ende – Jim Button and Luke the Engine Driver (Jim Knopf und Lukas der Lokomotivführer) (1960)

10. 기관차 대모험 (미하엘 엔데, 신동집 역)

Michael Ende – Jim Button and the Wild 13 (Jim Knopf und die Wilde 13) (1962)

“끝없는 이야기”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초기 작품들이다.  짐 크노프가 첫번째 작품, 기관차 대모험이 그 속편에 해당한다.  책의 초반에도 나오지만 크노프는 단추란 의미이고, 그래서 영어판에서 짐 크노프는 Jim Button이 되었다 (그리고 기관사 루카스는 영어판에서는 루크가 되었다).  미하엘 엔데의 작품들이 그렇듯 대단히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이며, 또한 이 상상력을 읽는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솜씨가 대단한 작품들이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초미니 사이즈의 섬나라라던가, 기관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넘어 용의 동굴을 탐험하고 인어를 만나는 모험담의 개연성 같은 건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그냥 별 상관이 없어져 버린다.  어릴 적에 무진장 많이 읽었던 책이다.

1961년 German Young Literature Award 수상작.

11. 니콜라 (르네 고시니, 최귀동 역)

René Goscinny – Little Nicholas (Le Petit Nicolas) (1959)

이 책은 옴니버스 구성의 단편집이다.  니콜라라는 꼬마 아이가 학교에 가고 생활하면서 세상을 자기 눈으로 바라보며 어른들의 우습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 세세히 나지는 않는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냥 내가 그 때 이미 별로 순수하지 못했는지, 니콜라에게 별로 공감되지도 않고, 니콜라의 생각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12. 제이미 서부로 가다 (로버트 루이스 테일러, 안혜초 역)

Robert Lewis Taylor – The Travels of Jaimie McPheeters (1958)

제목에 내용이 다 들어 있다.  켄터키에 살던 제이미 가족이 큰 빚을 지게 되자, 제이미와 제이미의 아버지가 금을 캐기 위해 서부로 간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 읽을 때는 몰랐는데, 골드 러시니까, 당연히…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다.  즉 이들이 바로 ’49ers 였던 것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가는 과정은 무시무시하게 험난한데, 실종, 사기, 배신, 살인에 인디언이 습격하고 도적이 습격하며 몰몬교도가 덤벼든다.  사실 제대로 일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러면 이야기가 굉장히 암울할 것 같지만 읽다 보면 꽤나 코믹한데, 아마 제이미와 제이미의 아버지의 캐릭터, 그리고 끝까지 유지되는 가족간의 유대 덕분일 것이다.  분명 주인공은 제이미이고, 제이미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사실 아버지가 준 주인공 같을 정도로 아버지의 캐릭터 묘사에 공이 들어가 있다.  때로 답답할 수도 있지만 이 실수도 많고 결점도 많은, 어찌 보면 결점이 많아 참 인간적인 아버지의 캐릭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제이미의 시선이 고난으로 가득 찬 여정을 덜 괴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여정 끝에 도달하는 엔딩은 참 인상적인데, 희망과 슬픔을 동시에 주는, 어찌 보면 작가의 배신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이 작품이 다른 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책이 내 기억에 이렇게 오래도록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청소년용 작품이 아닌 만큼 번역 과정에서 순화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람 가죽 벗기는 묘사가 그대로 나온 걸 보면 빠지거나 생략된 부분은 없을 것 같다.

1958년 퓰리쳐상 수상작.

13. 트러벨러 (안드루, 양남광 역)

Anne De Roo – Traveller (1979)

아니 Traveller란 제목을 트러벨러로 옮기는 센스는 어디서 나왔으며, Anne De Roo 를 다 붙여서 이름도 성도 없이 안드루 라고 쓰는 센스는 어디서 나왔나.  덕분에 영문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일어를 경유해서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New Zealand 사람으로, 다수의 작품을 쓴, 뉴질랜드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인 것 같다.  그런데 적어도 이 작품이 대표작은 아닌 모양인지, Scrub Fire 같은 작품은 정보를 얻기 쉬웠지만 이 작품은 정말 죽어라 안나온다.  나도 내용이 기억이 잘 안나는데…

기억으로는 어딘가 섬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였다.  그 이상은 정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4. 개척지로 떠난 톰 페니 (토니 저먼, 박석일 역)

Tony German – Tom Penny (1977)

미국을 배경으로, 개척지로 떠난다는 기본 소재는 앞서 이야기한 “제미이 서부로 가다” 와 비슷하지만 느낌은 딴판인 작품.  두 책 다 등장 인물들이 모험을 하며 고생을 한다는 것도 비슷하지만 “제이미 서부로 가다” 는 그러면서도 코믹한 느낌이라면 이 책은 웃음기 없이 훨씬 진지하다 (그렇다고 “제이미 서부로 가다” 가 진지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일단 아버지부터 죽는데다 캐나다로 떠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도착해서도 웃음기 없는 고난이 계속된다.  소재만 비슷하지 매우 성격이 다른 이야기임에도 북미 대륙에서의 모험담이란 이유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비교하며 읽었던 작품.

15. 호비트 모험 (J.R.R.톨킨, 공덕용 역)

J. R. R. Tolkien – The Hobbit (1937)

톨킨의 바로 그 호비트이다.  반지의 군주는 다음의 “머나먼” 시리즈로 6권으로 실려 있다.  호비트와 반지의 군주는 번역자는 다르긴 하지만 문제와 번역 방식은 비슷한데, 아마 둘 다 일본어 소스에서 중역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둘 다 톨킨의 번역 지침을 비슷한 수준으로 적당히 따르고 있으며 스미아골, 즉 골룸이 꿀꺽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밖에 여러 고유 명사와 번역들이 “머나먼” 시리즈와 공통된다.

16. 머나먼 길 – 반지이야기 1 (J.R.R.톨킨, 강영운 역)

17. 머나먼 숲 – 반지이야기 2 (J.R.R.톨킨, 강영운 역)

33. 머나먼 산 – 반지이야기 3 (J.R.R.톨킨, 강영운 역)

34. 머나먼 강 – 반지이야기 4 (J.R.R.톨킨, 강영운 역)

35. 머나먼 별 – 반지이야기 5 (J.R.R.톨킨, 강영운 역)

36. 머나먼 땅 – 반지이야기 6 (J.R.R.톨킨, 강영운 역)

J. R. R. Tolkien – The Lord of the Rings (1954)

톨킨의 반지의 군주가 6권으로 나뉘어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딱 Fellowship of the ring 까지 16/17권으로 들어간 후, 나머지 부분은 33권에 가서야 다시 나온다.  순서가 도대체 왜 이런지는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세트로 파는 전집인데 번역 시간이 밀렸다는 설명도 말이 안되고… 나중에 이야기할, 또다른 6권 구성인 “100만년” 시리즈도 26-28권 에 3권, 그리고 40-42권에 나머지 3권이 배치되어 있다. 왜?

“호비트 모험”과 마찬가지로 스미어골이, 즉 골룸이 꿀꺽으로 등장하는데, 호비트 모험에서는 “꿀꺽”으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고클리로 나온다.  이는 아마 일본어의 꿀꺽인 ごっくり를 잘못 번역한 것일 것이다.  “꿀꺽”으로 번역한 것 자체엔 문제가 없는데, 일본어 번역을 하면서 ごっくり를 몰라서 고클리로 번역한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일단 욕부터(…) 하는 번역판인데, 문제점이야 누가 봐도 매우 명백하다.  인명, 지명 문제도 그렇고, ごっくり의 번역을 보면 어디를 어떻게 번역했을 지 의심부터 들 것이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한에 있어서는 아예 이야기가 달라질 정도의 오역은 없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일찍 톨킨의 작품들을 접하게 해 준 책인지라 조금은 옹호를 해 주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 덕분에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반지에 빠져 살았고, 이게 사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었겠지만 나의 문학이나 예술을 보는 눈을 형성하는 데에는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물론 올바른 번역은 중요하고 번역가들은 당연히 바른 번역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나도 올바른 번역으로 톨킨의 작품을 접했으면 당연히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앨러소른의 아들 앨러고른이 플로드, 보로미어, 기믈리와 여행을 떠나 개러드리엘을 만나고 사울론과 대치하는 이야기를 읽고 반지이야기의 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예문판에서부터 시작된 정말 치열했던 인명과 지명의 발음 및 번역 논쟁이 조금은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톨킨이 그린 세계에 빠질 수 있다면 오르생크의 샐루먼이 타락하고 세오덴 왕이 미너스 틸리스로 진격하고, 데네솔이 죽어가는 팰러미어를 보고 좌절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인가 싶다 (단, 이 번역을 고치지도 않고 완역 운운하며 21세기에 다시 출판한 출판사의 행태는 어떤 식으로도 옹호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예문판 대비 장점도 있긴 한데, One ring을 “절대반지” 대신 “하나의 반지”로 옮긴 점이다.  One ring이 다른 모든 반지를 지배하긴 하지만, 세 개의 반지는 엘프들에게, 7개의 반지는 드워프들에게, 그리고 9개의 반지는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들에게 준다면 어둠의 군주에게는 하나의 반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점으로는, 한국어 번역이 의도한 게 아니라 소스인 일본어판이 의도한 것이겠지만, 톨킨의 번역 지침을 나름 따르고 있다.  번역의 정확성과는 별개로 말이다.

송곳니, 머리통 쏘아 벌레, 주남, 산아래 씨, 죄임쇠 마을, 갈라진 골짜기, 뱀의 혀 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맞춰 보라.  꿀꺽, 막다른 골목, 찌르는 칼, 소마정, 바람보기 언덕, 뿔피리 성, 장원은 또 어떤가.  이런 명사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어 원문을 영어 독자가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사실 이것이 톨킨이 원래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물론 100% 철저하게 따르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면 탐 봄바딜의 아내는 금딸기가 아니라 골드베리로 되어 있고, 발리맨 버터버, 오큰실드 등도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쓰인다.

나는 예문판 이후로는 영어판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후의 번역판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최근 번역판들은 톨킨의 가이드를 더 세련되게 잘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된 일이다.

18. 황새와 여섯 아이 (마인다트 디영, 김수영 역)

Meindert De Jong – The Wheel on the School (1955)

역시 일본어로 검색하니 금방 나온 작품이다. 번역된 제목도 일본어판 제목인 “コウノトリと六人の子どもたち”를 번역한 것이다.  어쩌면 본문도 일본어 중역일 지도 모른다.

어떤 마을에 오던 황새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아이들이 힘을 합쳐서 황새가 돌아오게 한다는 이야기다.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수레바퀴를 지붕에 올려서 둥지를 만드는 부분은 기억이 나며,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1955년 Newbery Medal 수상작.

19. 꼬마 철학가 (엘리너 파아존, 황명희 역)

Eleanor Farjeon

저자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 매우 저명한 작가이며, 매년 우수한 아동 문학에 수여되는, 저자의 이름을 딴 Eleanor Farjeon Award도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 책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다, 작가의 작품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책이 어느 책을 번역한 것인지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20. 매는 하늘에서만 빛난다 (우슬라 K 르구윈, 강혜숙 역)

Ursula K. Le Guin – A Wizard of Earthsea (1968)

르귄의 Earthsea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을 번역한 것이다.  Earthsea 시리즈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 작품이고, 저자인 어슐러 르귄도 팬이 너무 많아서 나 하나쯤 빠져도 상관 없을 만큼 말이 필요없는 아주 뛰어난 작가다.

제목은 책의 서두에 나오는 “에아의 창조” 에서 따 온 것인데,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기억에 의존해 쓰는 것이라 조금 틀릴 수도 있다).

“말은 침묵 속에서만,
빛은 어둠 속에서만,
삶은 죽음 속에서만 존재하느니라.
마치 매가 하늘에서만 빛나듯이”

반지 이야기와 달리 번역은 크게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에는 이야기가 함축하는 상징과 의미 같은 건 잘 몰랐지만, 그래도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당했던 작품이다.

21. 신부님 우리 신부님 (조반니노 과레스끼, 허문순 역)

Giovannino Guareschi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신부 돈 까밀로 시리즈.  아마도 돈 까밀로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을 번역한 것 같으나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돈 까밀로 시리즈 전체에서 단편을 골라 번역했는지도 모른다.  똥파워를 가진 신부 돈 까밀로와, 역시 똥파워를 가졌지만 돈 까밀로에게는 안되는 콩라인 공산당원 뻬뽀네,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는 지나칠 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코메디가 아니라 어지러운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풍자한 것이지만, 그런 것을 모르고, 또는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다.  어릴 때 눈물을 흘리며 보았을 정도.

요즘 세대는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80년대에 공산당원이 나오는 작품을 청소년용으로 출판하는 것은 상당히 대담한 시도였다.  당시는 여전히 공산당은 볼드모트 같은 절대악으로 취급받았고, 도서관에 반공 서적이나 반공 만화가 있었고,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 사건 관련 비디오를 학교에서 틀어주는 때였다.  이런 시대에 인간적이고 악하지 않은 공산당원이 나오는 청소년용 서적? 이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출판사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책 뒤의 해설에서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겠지만,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공산당과 같이 지낼 수 있다” 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이 설명만 보아도 당시 공산당에 대한 시각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22.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김양순 역)

Michael Ende – The Neverending Story (Die unendliche Geschichte) (1979)

아마 미하엘 엔데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이것일 것이다.  책 속의 이야기와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구분하기 위해 검은 색이 아니라 갈색과 녹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번역은 비교적 충실했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 원문으로 읽어보거나 새로운 번역을 읽어보지 못해 알 수는 없다.  어릴 적 읽었을 때는 전반부의 모험이 훨씬 더 재미있었고 후반부, 즉 반란이 일어난 후 기억을 잃고 여러 마을을 떠도는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그 후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읽어 보니 후반부야말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고 진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아트레유의 모험도, 책으로 들어온 바스티안의 모험도 아닌 바로 꿈의 광산이다.  기억이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바스티안이 소리 없이 땅 속에서 잊혀진 꿈들을 캐내는 장면은 이 작품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다.  나였다면 그 광산에서 어떤 그림을 캐내었을까?

이 작품의 영화판은 80년대에 한국에서도 개봉했었고, 나는 책보다 이 영화를 먼저 보았다.  극장에서 개봉 기념으로 준 약간은 조잡한 오린 목걸이를 받은 것도 기억난다 (무슨 생각인지 “행운의 오린” 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고, 특수 효과가 훌륭했다.  거대 바위 거인들이나 검은 늑대, 거대 거북이, 수많은 여러 종족, 그리고 행운의 용 팔코르가 정말 진짜처럼 잘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책을 읽어 보니 영화에서 다룬 내용은 책의 절반도 안되며, 후반부는 나오지도 않은 것이었다.  책의 후반부가 이야기에 더하는 무게와 깊이가 작지 않음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하긴 그 부분까지 포함하면 영화가 4시간도 넘어갈 테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지만.

두 번째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책의 후반부를 다루긴 한다.  문제는 이 영화는 평점이 바닥을 친다는 것…역시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23. 꼬마 비밀일기 (스우 타운센드, 강성일 역)

Sue Townsend – The Secret Diary of Adrian Mole, Aged 13 3/4 (1982)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비밀일기” 다.  이 책 말고도 두 권으로 출판된 비밀일기가 따로 있었다.  영국의 중학생 Adrian Mole이 쓴 일기란 형식으로 그의 일상을 묘사한 작품인데, 10대 소년의 고민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나름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막상 글을 잘 쓰지는 못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보일러 회사에 다녔지만 회사가 어려지며 실직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는 판도라와 사귀지만 연애도 순탄치만은 않다.  공부에 소질도 없고 하기도 싫지만 졸업 시험은 통과해야 한다.  10대 소년에겐 참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작가는 이 작품이 인기를 끌자 30여년에 걸쳐 여러 편의 속편을 더 썼으며, 주인공 아드리안은 작품 속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며 변화하는 영국의 환경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해 나간다.  마지막 책에서 아드리안은 30대 후반이며 이미 인생의 쓴 맛 (그리고 약간의 단 맛)을 맛볼 만큼 맛본 상태이다.  아쉽게도 작가가 다음 권을 집필하다 2014년에 작고했기 때문에, 아드리안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책이 80년대에 한국에 나왔을 때는 나름 “야한” 소설로 취급되었다는 게 재미있다.  야한 장면이래봐야 고작 여자친구 가슴을 옷 위로 만지는 정도인데 말이다.  아니면 여자애랑 뭔가 해보겠다고 포도를 갖다주는 장면 정도인데.

24.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바스콘셀로스, 최정은 역)

José Mauro de Vasconcelos – My Sweet Orange Tree (Meu Pé de Laranja Lima) (1968)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품이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책이었다.  주인공 제제에게는 하나도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주변 상황은 우울하기만 하고 등장 인물들도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없이 다들 우울하고 어딘가 상처가 있는 사람들 뿐이고 말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지는 모르겠다.

25. 깃발을 올려라 (제임스 R 울먼, 조순 역)

James Ramsey Ullman – Banner in the Sky (1955)

등산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난공불락의 봉우리인 Citadel을 등반하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루디가 등반에 도전하는 이야기.  등산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등장 인물들이 크레바스를 건너고 암벽에 매달려 손잡이를 찾고 루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세히 묘사된다.  등반 그 자체 뿐 아니라, 첫 등정을 위해 거짓말과 배신이 판치는 현실도 잘 그려져 있다.  이 책도 참 여러 번 심심할 때마다 읽었는데, 한 번은 밥을 먹으며 읽다가 국물이 책에 튀었던 기억이 난다.

26. 100만년 동굴 – 에이라 1 (진 M 아울, 김명숙 역)

27. 100만년 사냥 – 에이라 2 (진 M 아울, 김명숙 역)

28. 100만년 비밀 – 에이라 3 (진 M 아울, 김명숙 역)

40. 100만년 방랑 – 에이라 4 (진 M 아울, 김명숙 역)

41. 100만년 모험 – 에이라 5 (진 M 아울, 김명숙 역)

42. 100만년 만남 – 에이라 6 (진 M 아울, 김명숙 역)

Jean M. Auel – Earth’s Children (1980)

역시 왜 26-28권, 그리고 40-42권으로 서로 떨어뜨려 구성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이다.  원작은 총 6권이 나왔는데, 여기 번역된 것은 “에이라”와 “죤다라” 가 만나는 2권 (The Valley of Horses)까지다.  전체 시리즈의 중간에서 자른 셈이지만 여기서 끝내도 크게 위화감 없이 마무리가 된다.  사실 원작도 각 권이 수 년의 시차를 두고 나왔으니 문제될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공존하던 시대에 주인공인 “에이라” 가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목이 100만년 시리즈로 붙어 있지만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시기는 길게 보아도 40만년 전이며,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네안데르탈인과 실제 접촉한 시기는 5-6만년 전으로 본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약 3-4만년 전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제목의 100만년은 좀 과장된 것이다.  이 책의 번역도 중역이라는 의심이 있는데, 주인공인 Ayla가 에이라로 옮겨진 것도 그렇고, Jondalar가 죤다라, 부족장 Brun이 블른, 부족장의 아들 Broud가 블라우드로 옮겨진 점이 그런 의심을 들게 한다.

작기가 상당한 기간을 투자해 자료를 조사하고 작품을 쓴 덕분에 작품 속의 선사 시대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고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특히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서로 다른 기법으로 석기를 만드는 묘사는 무척 자세하다.  그러나 선사 시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작가의 가설이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네안데르탈인들이 집단 기억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책 속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조상 대대로 쌓아 온 기억과 지식을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전달받아 태어나며, 때문에 약초사인 “이저”의 딸은 약초에 대한 기억이 이미 머릿속에 새겨져 있지만 “에이라”는 그런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약초에 대해 열심히 학습해야만 했다.  또한 네안데르탈인들은 영적인 능력이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이나 숫자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현생 인류에 비해 지능은 뒤떨어지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당연할 것만 같은, 네안데르탈인 부족에서는 남녀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 여자는 사냥 도구만 만져도 큰 벌을 받지만 현생 인류의 부족에서는 남녀가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설정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네안데르탈인 여성이 사냥에 참여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도 한다 (물론 수만 년 동안 이들의 사회상이 고정되어 있던 것은 아닐 테니 일단 작품과 모순은 아니다).

또한 당시엔 정설이었지만 나중에 학설이 뒤집힌 경우도 있다.  작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은 발성 기관이 잘 발달되지 않아 의사 소통은 주로 몸짓 언어를 이용하는데, 이는 당시의 연구에 기반한 것이지만 현재는 네안데르탈인들도 상당 수준의 음성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반대로, 책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혼혈이 등장하는데 과거에는 네안데르탈인을 현생 인류와 다른 종으로 보아 교잡이 불가능했다고 보았지만 현재는 genome sequencing의 눈부신 발전으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상당한 수의 교잡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단한 흡인력을 지닌 작품이며, 주인공은 즐겁지 않겠지만 주인공을 따라 선사 시대의 지구를 모험하는 즐거움이 대단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The Mammoth Hunters 부터는 상당히 평이 안좋지만 적어도 여기 번역된 The Valley of Horses까지는 굉장히 재미있다.

청소년용으로 기획된 전집에 포함된 작품인데 묘사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으나 남녀의 성행위가 비교적 자세히, 비중을 갖고 그려진다. 이 시대에는 성관계가 자유로웠다는 것이 작품의 기본 설정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29. 하얀 배 (징기스 아이뜨마또프, 맹은빈 역)

Chinghiz Aitmatov (Чыңгыз Айтматов) – The White Ship (Белый пароход) (1970)

키르기즈스탄의 한 호숫가 마을에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전통, 신화, 그리고 변해 가는 시대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인데, 기억이 정말 단편적으로밖에 나지 않는다.  고요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기억날 뿐…

30. 모모 (미하엘 엔데, 홍문 역)

Michael Ende – Momo (1973)

미하엘 엔데의 또다른 대표작이다.  이 전집에는 미하엘 엔데의 작품만 4편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의미로서의 “시간”에 대한 걸작이며, 동화이긴 하지만 사실 동화로 취급하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 깊다.  (작품에서도 나오듯이 시간이 많고 시간을 아낄 줄 모르는) 어릴 때보다 지금, 매일매일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써버리고 있는 지금 더욱 더 생각할 게 많은 그런 작품.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와 카시오페아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난다.

1974년 German Young Literature Award 수상작.

31.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캐더린 패터슨, 박현미 역)

Katherine Paterson – Jacob Have I Loved (1980)

미국의 어떤 작은 섬에서 어부 집안에 태어난 두 자매의 이야기다.  제목은 성경의 로마서 9장 13절의, 하느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했다는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As it is written, Jacob have I loved, but Esau have I hated.”

보통 이 이야기는 에서가 장자권을 하찮게 여긴 탓에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을 받았다고 하며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에서의 잘못에서 찾지만, 어떤 해석에서는 야곱이 에서를 속여 축복을 빼앗는다는 점을 들어 에서의 억울함과, 잘못된 방법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룬 야곱의 과오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이던,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는 결국 가족간의 화해의 이야기이며, 이 작품의 내용을 생각할 때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며 죽을 뻔한 여동생 캐롤라인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의 관심을 받았고, 성장하면서도 언니인 사라보다 더 예쁘고, 더 활발하고, 더 사랑받는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온 가족이 캐롤라인에게 지원과 특혜를 아끼지 않으며, 언니는 여동생에 밀려 찬밥 신세이다.  언니는 그런 동생에게 열등감을 가지면서도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정으로 매일을 살아나가지만, 성장하며 차츰 그런 감정을 극복하고 그 동안 자신을 속박해 온 작은 섬을 벗어나 가족과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한다는 이야기다.

읽어 보면 결코 밝거나 즐거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이 이야기의 솔직함 떄문일 것이다.  작품은 사라가 느끼는 열등감과 폐쇄감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사라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아니, 몇몇 일들은 오히려 사라가 본인의 결점으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의 성장과 화해가 더욱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일 것이다.

1981년 Newbery Medal 수상작.

32. 기관총 요새 아이들 (로버트 웨스톨, 유원 역)

Robert Westall – The Machine Gunners (1975)

이 책도 어릴 적에 굉장히 좋아해서 꽤나 자주 읽었던 책이다.  2차 대전 영국을 배경으로, 추락한 독일 폭격기에서 기관총을 주운 아이들의 이야기다.  전쟁에 총, 그리고 아이들의 로망인 아지트가 나오는 이야기가 재미없을 리가.  물론 책은 그런 양산형 소설은 당연히 아니고, 아이들의 우정과 엔딩에서의 쓸쓸함까지 갖춘 훌륭한 작품.

1975년 Carnegie Medal 수상작이며, Medal 70주년 기념 투표에서 역대 10선에 포함되었다.

37. 운명의 아이들 (피터 카터, 황종호 역)

Peter Carter – Children of the Book (1982)

작가인 Peter Carter는 역사 이야기를 많이 쓴 작가이다.  이 전집에 그의 작품이 둘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2차 빈 공방전에 대한 이야기며, 오스만에 동원된 소년병과 오스트리아의 시민, 그리고 폴란드 측의 귀족 소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반전(反戰)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영광의 순간에 찾아오는 결말을 보고 나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야기를 끌어 온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38. 신들의 탄생 (리안 가필드, 에드워드 브리센, 강성희 역)

Leon Garfield, Edward Blishen – The God Beneath the Sea (1970)

두 작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리스 신화를 재구성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기본 구성을 따라가며 여러 신들이 탄생하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내가 그리스 신화를 세세히 알지는 못하기 떄문에 작가가 어느 정도 신화를 각색했는지, 어떻게 변경했는지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1970년 Carnegie Medal 수상작.

39. 반노예선 (피터 카터, 최홍규 역)

Peter Carter – The Sentinels (1980)

Peter Carter의 다른 작품이다.  영국이 노예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아프리카 해안에서 노예선을 적발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소년 존 스펜서는 왕립 해군에 들어가 반노예 활동을 하는 배에 타고 선원으로서 성장해 나간다는 이야기.  당시 배를 타던 선원들의 생활과 범선끼리의 해상전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주인공인 존 스펜서, 그리고 노예로 잡혀가다 구출된 흑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흑인은 구출받는 입장이지만 작가는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대단히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어릴 때 이걸 읽고 한 동안 범선 프라모델이 만들고 싶었고, 범선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Guardian Prize 수상작.

43. 유리카 선생 (섯클리프, 안순희 역)

Arthur Sutcliffe – Stories from Science

역사에서 있었던, 과학 연구, 발견, 발명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에게도 분명 이름이 있는데 왜 성만 따와서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의 유리카 선생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 라고 외친 에피소드에서 온 것이다.  왜 유레카가 아니라 유리카냐면, 이건 아마 미국식 발음인 듯 하다.  책은 꽤 재미있었는데, 이 책이 원본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모두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만 추려서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과학사의 뒷얘기” 란 제목으로 새로 번역되어 있다.

44. 그해 봄은 빨리 왔다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 조현례 역)

Christine Nöstlinger – Fly away Home (Maikäfer flieg) (1973)

2차 대전 당시 빈에 살던 주인공 소녀의 가족이 전쟁을 겪어 나가는 이야기다.  전쟁 중의 삶이 풍족하고 즐거울 리 없고, 주인공 가족도 삭량 부족에 심지어 집은 폭격으로 부서지는 등 여러 가지로 고생한다.  그런데 작품은 무겁지 않으며, 오히려 코믹할 정도다.  등장 인물들은 결코 유머를 잊지 않으며, 그래서 분명히 불행하지만 불행하지 않다.  작품에서 나오는 전쟁 중의 삶에 대한 살아 있는 묘사는 아마 작가 자신이 빈에서 태어나 2차 대전 당시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의 봄은, 당연히 종전을 의미한다.

45. 폭풍우섬 오누이 (트레드 골드, 정지영 역)

Mary Treadgold – We Couldn’t Leave Dinah (1941)

이젠 저자의 성인 Treadgold를 가져다가 이름과 성을 만들어냈다.  제목이야 내용을 생각하면 의역으로서는 봐줄 만 하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외딴 작은 섬에 살던 남매가, 독일군이 이 섬을 점령한 후 첩보원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들어도 재미있는 모험극으로 들릴 텐데, 실제로도 그렇다.  원제의 Dinah는 섬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 아끼던 말의 이름이다.

1941년 Carnegie Medal 수상작.

46. 황금의 일곱 도시 (스코트 오델, 임중빈 역)

Scott O’Dell – The King’s Fifth (1966)

책 말미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에 나온 대로, 원제는 왕의 5분의 1이다.  당시에는 원정에서 얻은 재물은 1/5를 세금으로 왕에게 바쳐야 했으며, 이것이 제목의 의미이다.  10대 소년인 주인공은 남미의 황금 도시의 전설을 쫓은 탐험대의 일원으로 원정을 떠났다가 왕의 몫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갖혀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책은 탐험에 대한 주인공의 회고와,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현재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적이고 아주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모험담이다.  지도제작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고.  하지만 책 속에서 주인공이 이야기하듯 감옥에 갖힌 주인공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당시 읽을 때도 억울한 주인공의 처지가 마음에 많이 걸렸었다.

1967년 Newbery Medal 수상작.

47. 노랑 리본 (알렉스 헤일리, 권미영 역)

이것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제목의 노랑 리본은 실린 단편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밖에 2차 대전 중 크리스마스에 농가에서 마주친 연합군과 독일군 병사 이야기, 그리고 폭격기 포탑에 갖혀버린 군인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48. 사람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 1 – 원시 (일리인, 동완 역)

49. 사람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 2 – 노예 (일리인, 동완 역)

50. 사람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 3 – 문명 (일리인, 동완 역)

Mikhail Ilyin (Ilya Yakovlevich Marshak) – How a man became a giant (1940)

이 책 역시 저자의 이름은 빼 버리고 성만 적어두었다.  인간의 역사를 원시시대부터 근대까지 조명하면서 어떻게 인간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하였는지를 서술한 책이다.

지금까지 보면서, 포함된 작품들이 전집에 포함될 만하게 느껴졌는지 궁금하다.  언뜻 보면 Newbery 메달과 Carnegie 메달 수상작들을 좀 골라 오고, 그리고 반지의 군주와 Earth’s children을 넣으면 전집의 절반이 이미 완성되는 그런 느낌이다.  아마 이 이유 때문에 Ace88이 작품 수가 적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일단 절대적인 권수도 50권으로 적긴 하지만, 그 중에 머나먼 시리즈 6권, 100만년 시리즈 6권,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 3권을 빼면 35권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외에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같이 이미 그리고 자주 출판된 책, 그리고 그리스 신화 이야기라던가, 넌픽션인 유리카 선생 같은 책도 있으니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의 숫자는 더욱 줄 수밖에.

그래도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때 찾아 읽어보기 힘든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데는 의의가 있다.  지금도 몇몇 작품은 구하기 힘들어서 이 전집의 낱권을 구해 보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어린 시절에 이런 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행운이었고, 그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기도 하다.

7 thoughts on “ACE88의 추억

  1. 안녕하세요. 검색 중 이 글을 보게 되었는데, 저도 ACE88로 여러 명작에 입문했던 터라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중 저도 좋아하는 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하셨다고 해서, 간단하게나마 아는 바를 남깁니다. 원제는 , 저자는 리디아 네크라소바(Lidiya Vladimirovna Nekrasova). 라는 제목은 일본에 소개될 때의 제목인 에서 따온 듯 합니다. 원작자는 소설작가보다 작사가로 유명한 것 같고, 서너 편의 소설이 있나 봅니다. 저는 러시아어를 못하지만; 은 아래 사이트에서 전문 제공하고 있어서 영어 번역으로 확인했습니다. 참고가 되시면 좋겠네요!
    https://libking.ru/books/child-/child-prose/524167-lidiya-nekrasova-den-rozhdeniy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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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감사합니다. 영어번역판은 없는 것 같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어 전문을 번역기로 돌릴 수 있네요 ^^ 잘 볼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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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3. 트러벨러 (안드루, 양남광 역)
    ANNE DE ROO – TRAVELLER (1979)
    이거 확인해보니 “Traveller”가 등장하는 개의 이름이군요. 그러니 사실 “트러벨러”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과히 틀렸다고 보기 어렵네요.
    “안드루”도….”앤 드 루”를 그냥 붙였다고 보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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